2011년 1월 18일 화요일

[인터넷뉴스]이란 고트비 감독은 구자철을 모른다

한국의 8강 이후 대진이 확정됐다. 한국은 호주에 이어 C조 2위가 됐다. 한국은 8강에서 D조 1위를 확정한 이란을 만나고 승리하면 일본-카타르전 승자와 4강에서 격돌한다. 인도전 결과가 아쉽지만 우승을 목표하는 한국으로선 어차피 만날 상대들이다. 순서와 장소가 달라졌을 뿐이다. 갈 길은 그대로다.
2011 카타르 아시안컵 공식 경기 일정표.©AFC

참고로 2011 아시안컵 순위 선정은 승점>승자승>전체 골득실>전체 다득점>페어플레이 점수>추첨 순이다. 다가오는 새벽 이란이 조별리그 최종전 UAE전에서 큰 점수 차로 패하고 이라크가 북한을 큰 점수 차로 꺾어도 이란의 조1위에 변함없는 건 이 때문이다. 승자승은 맞대결 결과를 뜻하는데 이란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이라크를 2-1로 제압했다.
이란은 까다로운 상대다. 한국이 맞대결 전적에서 뒤진 얼마 되지 않는 아시아 국가 중 하나다. 24전 8승7무9패로 박빙의 열세다. 2005년 10월 2-0승리 이후 최근 6경기(4무2패) 동안 승리가 없는 한국이다. 2007년 아시안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로 이겼지만 공식 기록은 무승부다. 조광래 체제의 유일한 패배 역시 이란에 당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 이란에 0-1로 패했다. 예선을 포함한 아시안컵 상대전적에서도 2승2무4패로 뒤져 있는데 알리 다에이, 카림 바게리, 알리 카리미 등은 한국축구사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들이다. 다에이와 카리미는 한국이 아시안컵 본선에 나선 반세기 세월 동안 딱 2번 내준 해트트릭의 주인공들이다.
이란 축구는 중동 축구가 아니다
한국이 이란에 고전한 이유 중 하나는 축구 스타일에 있다. 이란 축구는 상대적으로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뛰어난 피지컬 경쟁력을 바탕으로 파워플레이를 즐긴다. 이란 사람들이 듣기 거북해 하는 표현 중 하나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과 한데 묶어 중동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걸프 해를 사이에 두고 다른 문명과 민족의 역사를 엮어왔다. 지리적으로도 이란의 페르시아는 유럽에 가깝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도는 아프리카에 가깝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란은 파워가, 사우디아라비아는 개인기가 뛰어난 축구 스타일을 보였다.
한국축구와 인연이 깊은 고트비 감독은 이번 대회가 끝나는대로 J리그 시미즈 S펄스 사령탑으로 부임한다.©

이란의 이러한 축구 흐름과 스타일은 멀게는 알리 다에이, 가깝게는 알리 카리미, 메흐디 마다비키아, 바히드 하세미안 등이 선 굵은 유럽축구의 강인함을 과시한 독일 분데스리가를 누빌 수 있게 한 배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란대표팀에 분데스리가 선수는 없다. 카리미, 마다비키아, 하세미안 등이 독일 무대를 떠나기도 했지만 이들 이름 자체가 대표팀에서 보이질 않는다. 은퇴 한 건 아니다. 카리미와 마다비키아는 스틸 아진, 하세미안은 페르스폴리스의 자국리그에서 뛰고 있다. 유럽파는 스페인 오사수나에서 뛰는 자바드 네쿠남과 마수드 쇼자에이 둘 뿐이다. 그럼 왜 카리미 등의 이름이 보이질 않는 것일까?
외부적 충격과 파장 여파다. 2009년 6월17일 서울에서 치른 한국과의 남아공월드컵 예선전 사건 때문이다. 카리미와 마다비키아, 하세미안, 카에비 등 이란의 일부 선수들이 손목에 녹색 밴드를 차고 경기를 치른 것이 화를 불렀다. 녹색은 당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가 치른 대선에서 개혁파인 무사비 전 총리를 상징하는 색깔로 카리미 등 손목에 녹색 밴드를 찬 선수들은 경기 후 정치적 행위에 따른 대표팀 박탈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카리미와 마다비키아, 하세미안, 카에비는 그 후로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고 카리미가 남아공월드컵 예선 도중 복귀했지만 결과적으로 세대교체의 흐름에 밀려났다.
카리미, 하세미안, 마다비키아 어디 갔나?
이란대표팀 구성 변화에 주목하는 건, 이유를 떠나 세대교체에 따른 전술적 변화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테헤란의 헬리콥터’로 불렸던 하세미안과 돌파가 뛰어났던 마다비키아가 선 굵은 형태의 공격을 전개했다면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운 칼라트바리와 안사리파드 등은 잰 발로 끊어 들어가는 ‘작은’ 플레이에 능한 공격수들이다. 칼라트바리는 지난 시즌 성남과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란 조바한의 주포로 뛰어 우리 팬들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오른쪽 윙 포워드인 레자이도 비슷한 유형으로 프리미어리거 출신인 테이무리안이 허리 쪽에서 공을 연결해 골을 넣는 패턴이 이란 공격의 주된 형태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익숙한 기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현 이란대표팀의 모습이다.
세밀하게 끊어 들어가는 발재간이 좋고 민첩한 이란 공격수들의 특징을 감안한다면 8강 이란전에 나서는 우리대표팀의 중앙 수비라인 조합에 특히 신경을 써야한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매번 골을 내준 한국 수비진의 문제 중 하나는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려 뒤를 내주거나 적절한 커버와 복귀를 못한 점이다. 특히 인도전에 호흡을 맞춘 황재원과 곽태휘는 높이와 파워 면에서는 강점을 지니고 있지만 둘 모두 스토퍼 스타일로 대인방어의 뒤를 받치는, 기다리고 메우는 커버링에 약하다. 스위퍼 역할을 소화할 이정수의 이란전 복귀가 중요한 이유다. 준족의 공격수 출신인 이정수의 경쟁력은 이란 공격진의 빠른 발을 묶는데도 효과적이다. 피지컬이 뛰어난 차두리가 이란전에 선발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공격 못지않게 수비의 역할이 강조될 경기다.
수비라인 전체적으론 앞으로 쏠리고 덤비는 수비를 주의해야 한다.
이란 전력의 핵심은 허리의 척추라인인 네쿠남과 테이무리안이다. 이란 최초의 스페인 라리가 플레이어인 네쿠남은 이란대표팀의 주장으로 남아공월드컵 지역예선 과정에서 박지성과 설전을 벌인 인물이다. 교체로 뛰는 쇼자에이와 달리 네쿠남은 오사수나에서 주력으로 활약 중인데 히딩크, 베어벡 감독 등의 영향으로 강한 압박축구를 구사하는 압신 고트비 감독 축구의 ‘종결자’라 할 만하다. 네쿠남이 포백라인 앞에서 공수 균형을 잡는다면 테이무리안은 전방 공격진에서 기회를 엮어주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소화한다. 볼튼과 풀럼을 거치기도 한 테이무리안은 시야와 패싱력이 수준급이다.
구자철-기성용 라인이 이란전 승부수 
네쿠남과 테이무리안 라인을 상대하고 뚫을 가장 효과적인 카드가 구자철이다. 인도전을 포함해 조별리그를 통해 지켜봤듯 현 한국의 가장 효과적인 전형은 4-2-3-1 형태의 원톱 시스템이다. 박주영의 부상 공백 속에 투톱 조합에 대한 자원 부족 등도 이유지만 미드필드진을 더 촘촘하게 구성하고 공수 전환을 매끄럽게 전개하는데 효과적인 배치다. 이란처럼 피지컬과 프레싱이 뛰어난 팀을 상대로는 번뜩이는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만들고 예상 못한 패싱으로 기회를 엮어주는 존재가 필요한데 골 결정력 등 물 오른 기량을 맘껏 분출하고 있는 구자철이 적임자다. K리거의 파워, 지동원과의 콤비네이션도 두드러진다.
3경기 연속골로 득점 선두에 오른 구자철.©게티이미지

득점랭킹 선두에 올라 있는 구자철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처진 스트라이커 위치로의 전방 이동과 함께 수비 부담을 최소화시켜준 기성용과 이용래의 역할이 컸다. 특히 셀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 중인 기성용은 대표팀에서도 홀딩과 피딩을 담당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안착했다.
8강 이란전서 구자철과 기성용의 활약에 기대를 더할 수 있는 건 ‘지한파’ 고트비 감독이 이 둘의 세세한 특징과 강점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란과의 8강 대진이 우리로서 부담이 더한 건 이란의 고트비 감독이 한국대표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트비 감독은 2002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 감독을 돕는 전력 분석관으로 한국축구와 인연을 맺어 2007년 베어벡 감독과 함께 공동 사퇴하기 전까지 6년여를 가까이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을 지켜봤다. 하지만 기성용과 구자철 모두 2008년 이후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선수들로 고트비 감독 머릿속에 담긴 정보 데이터가 많지 않다. 기성용과 구자철은 지난해 9월 한국이 패한 이란전에도 결장했다. 당시 경기가 끝난 뒤 고트비 감독이 한국대표팀에 한 훈수를 두고 미묘한 설전을 벌인 고트비 감독과 조광래 감독의 수 싸움의 열쇠는 기성용과 구자철이 쥐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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